국제

긴급속보ㅣ(대박) 한일 영토 분쟁에 대한 엄청난 사건 화제

Eddi 2022. 5. 15. 1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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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도, 한국의 영토로 반환될 확률 무려 90%에 달해 

 

지난 수십년간 국제사법재판소 로비와 인맥을 믿고 끊임없는 영토분쟁으로 한국을 괴롭혀오던 일본. 그리고 영토분쟁에 대해 전략적 인내로 일관하던 한국이 본격적으로 반격에 나섰습니다. 한국이 반격을 시작하자마자 일본이 해온 거짓말들이 만천하에 드러나 일본정부가 당황스러움을 숨기지 못하고 있는데요. 이에 일본이 전전긍긍하며 신임 외교부장관을 찾아와 그간 자행해왔던 영토분쟁을 없었던 것으로 돌려 달라고 애원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이에 대해 알려드리겠습니다. 

 

한국과 일본의 영토 분쟁이 드디어 국제사법재판소에 회부되어 세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습니다. 국제사법재판소는 일본 왕세자비의 아버지인 오와다 히사시를 판사로 둔 아주 대표적인 친일파 국제기관으로 평가받는 곳인데요. 그러므로 지금까지 세계 외교 전문가들은 이문제가 국제사법재판소에 회부될 경우 한국이 어떤 대응 논리도 내세우지 못한 채 패배할 것이란 전망이 이어졌습니다.  하지만 현재 한일 영토분쟁 문제에 대한 세계외교 전문가들의 전망이 완전히 전환되는 엄청난 사건이 벌어져 화제라고 합니다 

 

바로 대마도가 한국땅이 맞다는 증거가 전면적으로 인정받기 시작해 일본의 로비가 완전히 무력화되었다는 반가운 소식인데요. 이로 인해 대마도가 우리 한국의 영토로 공식적으로 반환될 확률이 무려 90%에 달한다고 합니다. 대마도는 원래 조선에 속한 땅이었으나 일제강점기 당시 일본이 강제로 침탈한 대표적인 우리 한국의 영토입니다.  

 

 

독일인 클라프로트(J. Klaproth)가 프랑스어로 번역 출판한 삼국접양지도(1785), 대마도 고지도 (조선 영토를 노란색으로 칠한 대마도, 독도, 울릉도).

 

그 증거로 광복이후 미국 육해군 합동 정보조직인 ‘JANIS’가 백악관에 보낸 보고서에는 대마도가 한국 영토로 명시되어 있습니다. 소련은 심지어 한국의 독립을 논의했던 카이로 회담에서 대마도는 한국의 땅이니 돌려주어야 한다는 명확한 입장을 드러냈죠. 하지만 한국전쟁이 발발한 틈을 타 일본이 대마도에 몰래 자위대를 보내 강제로 침탈했습니다. 미국이 이를 강력하게 문제삼자 일본은 미국이 알고 있는 정보가 틀리다는 말도 안되는 주장을 펼쳤는데요. 그 주된 논리로 내세웠던 것이 바로 한국의 국력 부족이었다고 합니다. “조선은 해군력이 약해서 감히 일본을 상대로 대마도를 가질 수 없다” 라는 발언이었죠. 일본은 당시 증거로서 대마도가 일본의 영토라고 쓰인 신빙성 없는 중국의 고서적과 대마도가 일본땅이라고 스스로 표기해둔 엉터리 지도를 미국에 제시했다고 합니다. 부정부패와 로비로 뒤덮인 국제사법재판소에서 일본이 가진 위상을 믿었던 것인지 일본은 이번에도 수십년 전과 똑같은 논리와 근거를 들고나와 물의를 빚었습니다. 이토록 아무런 준비도 하지 않고 수백 년 전 논리와 근거를 그대로 사용하는 것은 한국 외교부를 완전히 무시하는 처사라는 것이죠.    

 

사진 1. 미국 JANIS 75권의 한국편 제1책 인구편에 등장하는 한국지도. 왼쪽 위편으로 '한국 인구밀집 지역'이라는 제목이 보이고, 왼쪽 아래에 제주도가 이어 오른편 아래쪽에 대마도( Tsushima )가 선명하게 인쇄돼 있다. 제주도 해안가로 인구가 밀집해 있는 것처럼 대마도 위 아래쪽으로 인구 밀집지역이 표시돼 있다. 출처 : 미국 국립문서보관청, NARA.

 

  

카이로 회담, 1943년 11월 25일 카이로에 모인 세 정상. 왼쪽부터 장제스, 프랭클린 루스벨트, 윈스턴 처칠. /위키피디아.
 

그러나 이번 대결의 양상은 이전과는180도 뒤바뀌어 흘러가는 중이라고 합니다.  바로 한국의 외교관들이 과거 일본의 또 다른 영토분쟁을 근거로 들고 나오자 일본은 아연실색할 수밖에 없었다고 하는데요. 미국과 일본 사이에 있었던 오가사와라 제도 분쟁. 당시 일본의 능력이 부족해 오가사와라 제도를 방치하다가 미국이 아무것도 없는 빈땅을 사용하자 오가사와라 제도를 무단 점유했다며 미국과 영토분쟁에 들어갔던 사건입니다. 이를 되찾기 위해 일본은 그 제도가 일본의 영토가 맞다는 증거를 내놓아야 했는데요. 당시 일본은 그 증거로 1785년 프랑스인의 손으로 그려진 삼국접양지도를 내놓아 미국을 상대로 오가사와라 제도 영토분쟁에서 승리했습니다.  

  

이렇듯 삼국접양지도는 당시 공증을 위해 참석한 국가인 영국과 영토분쟁 대상이었던 미국이 공식적으로 인정한 역사적인 증거인 셈이죠. 그런데 그지도에 독도와 울릉도는 물론이고 대마도까지 한국의 영토로 명확하게 표시되어 있어 재판에 참여한 일본 외교관들을 패닉에 빠지게 만들었습니다. 이 사실이 국제사법재판소 법정에서 만천하에 들어 나자 일본의 뇌물을 받은 국제사법재판소의 판사들은 당황한 기색을 숨기지 못했다고 하는데요. 자신들이 과거에 사용했던 수가 일본에게 역으로 돌아와 독도를 국제사법재판소로 끌고 가려던 일본의 전략이 자충수가 되어버린 셈입니다.  

  

삼국접양지도(프랑스어판) 원본의 사진 (1785).

 

독일인클라프로트(J. Klaproth)가 프랑스어로 번역 출판한 삼국접양지도.

 

삼국접양지도(1785).

 

이에 사안의 심각성을 느낀 일본 정부는 일본정부의 외무대신인 하야시 요시마사를 한국에 급파하여 서울 모처에서 박진 외교부장관과 긴급회담을 가졌다고 합니다. 그리고 긴급회담이후 기자회견을 가지고 현안 해결을 위해 속도감 있게 협의할 것을 천명한 하야시 요시마사 외무대신은 굳은 얼굴을 한채 회의장을 빠져나가 세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습니다. 

 

박진 외교장관 후보자와 하야시 일본 외무상 (2022.05.09).

 

대마도 현지인 들의 반응 또한 주목받고 있습니다. 그들은 대마도의 한국편입 가능성이 높다는 소식을 듣자 “한국인인 내가 일본인으로 사는 것이 이상한 것이었다” 라며 당연한 듯한 반응을 보였는데요. 대마도인은 본래 백제부흥운동에서 패한 유민들의 후손으로 현정스님의 ‘일본표해록’ 에도 한국인과 매우 비슷한 생활양식을 지닌 것으로 묘사됩니다. 이 책에서는 대마도인에 대한 묘사를 ‘본래 일본 말보다 한국 말에 능하며 조선을 부처의 나라로 표현하는 등 조선에 강한 친밀감을 가진다.’ 라는 말로 시작하는데요. 더불어 의복이나 고기를 좋아하는 식 문화, 섬사람임에도 불구하고 말 타기에 능하다는 기록을 통해 대마도인의 정체성이 일본인과 완전히 다르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태풍으로 일본에 표류해 7개월간 머물다 귀국한 현정스님이 쓴 <일본표해록>. 기록속에는 대마도인들로부터 '우리도 조선인이다'라고 들었던 말을 기록한 글이 있다.

 

이렇듯 대마도인은 과거부터 자신이 한국인이라는 강한 인식을 가지고 있었는데 철수했던 일본군이 어느 순간 다시 들어와 당당하게 대마도의 주인 행세를 하고 있어 분노했다고 하는데요. 해방될 당시 발발한 한국전쟁을 틈탄 일본의 야욕으로 대마도를 무단 점거한 사례가 바로 이것입니다. 일본의 끝을 모르는 욕심은 자기 죄를 뉘우칠 새도 없이 이어졌고 그로 인해 우리는 또다시 동포를 잃어야만 했던 것이죠. 하지만 이번에 국제사법재판소에서 밝혀진 진실들로 인해 일본은 대마도를 날조된 자료와 거짓말로 강탈해간 죄의 대가를 치르게 될 것으로 보입니다. 대마도 소유권을 박탈당하는 것은 물론이고 지난 수십년간 식민통치하고 있었던 것에 대한 금전적 보상을 한국에 지불하게 될 것으로 전망됩니다.  

 

 

독도 문제를 거론하며 한국을 집요하게 괴롭히던 일본. 한국의 일본의 거짓말을 더이상 좌시하지 않고 반격에 나서자 그 즉시 일본의 논리가 속수무책으로 무너져 내리는 모습입니다. 일본은 뒤늦게 잘못을 깨닫고 황급히 한국 외교부를 찾아 사태를 진정시키려 애쓰는 모습이지만 한국은 표면적인 대답만 내놓을 뿐이죠. 일본은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르다’ 라는 격언을 믿고 이제 와서 한국에 매달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속적인 망동에도 참을 만큼 참은 한국은 일본에게 세상은 격언데로 흘러가지만은 않는다 것을 알려주려는 모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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