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천년의 꿈인 일본의 한일해저터널

Eddi 2023. 5. 10. 22:52
반응형

 

지진과 화산이 유독 빈번한 일본은 자신들의 운명을 깨닫고는 천년 전부터 대륙 진출의 꿈을 꾸고 있습니다. 이 꿈을 위해 임진왜란을 일으키는 등 전쟁도 서슴지 않았죠. 일본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아무래도 열도 전체가 바다로 가라앉고 있다는 점일 텐데 실제로 일본은 침몰 중에 있습니다. 기후변화로 빙하가 녹고 해수면이 상승하자 추세는 더욱 빨라진 것으로 보이는데 네덜란드의 레스 르켄스 교수팀의 연구에 따르면 도쿄는 지난 100년간 4.25미터 가라앉았습니다.

해수면이 상승한다는 것은 땅이 가라앉는다는 의미로 통상 아파트 1층의 높이가 최대 2.6미터라고 봤을 때 지난 1세기 동안 도쿄는 상당히 많이 가라앉았다는 결론이 내려집니다. 그래서 아예 일본 열도를 통째로, 한반도로 옮기려는 시도도 있었는데, 일제강점기 때 그랬습니다. 일제강점기는 일본이 단순히 한반도를 점령한 것이 아니라 조선을 일본에 편입시킨 후 수도를 포함 정치 및 경제 기반을 한반도로 옮겨 이사 오려던 계획입니다. 

그래서 현재 서울을 일제강점기에는 경성이라 불렀는데 여기에서 '경'이란 수도를 뜻합니다. 그래서 일본 수도인 도쿄는 동경이라 했는데 이는 동쪽의 수도를 의미합니다. 그러니까 진짜 수도는 한반도의 '경성'에 만들고 현재 도쿄는 지방 정부로 격화됩니다. 한 국가에 2개의 수도가 존재할 수는 없어, 백제 옛 수도 부여에 신사 중 최고 등급인관패대사’ 를 건설하겠다며 건설을 시작했었는데 이는 당시 도쿄에 있던 1급 신궁과 동일한 등급이고 메이지 신궁보다 훨씬 거대한 규모였죠.

관폐대사를 건설한다는 것은 일왕이 직접 부여로 찾아와 참배한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1939년 7월 31일 ‘히로히토’ 일왕이 직접 라디오에 출연해 “부여에 신궁을 건설한다”는 계획을 밝히기도 했는데요. 어쨌든 이러저러한 일본의 노력 불구하고,  천년 동안 꿈꾼 일본 대륙 진출의 꿈은 실현되지 않았습니다. 

1년 전 대통령 선거가 진행될 당시 가장 큰 이슈는 가덕도 신공항과 한일해저터널이었습니다. 가덕도 신공항 이야 부산 울산 경남 지역의 오랜 숙원 사업이기 때문에 그러려니 했지만, 한일 해저터널은 일약 정치권을 발칵 뒤집어버렸습니다. 당시 이를 적극 검토하겠다던 한 국회의원은 엄청난 비난을 받았는데 왜냐면, 한일 해저 터널은 일본이 천년 동안 바라던 대륙 진출의 꿈이 현실로 나타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일본에 비해 적은 재정을 부담하고 일자리가 창출되는 등 기대 효과도 컸지만 일반 시민들의 인식은 달랐는데요. 그렇다면 이 한일 해저 터널은 불과 몇 년 전에 수면 위로 떠오른 사업일까요? 아닙니다. 이 사업은 일제강점기가 시작된 1900년대 초반부터 논의됐었고 일본의 일방적인 조사이기는 했지만, 본격적으로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은 1917년입니다.  

한일해저터널 노선 구상도.
가덕도 신공항안 개요.

하지만 광복 후 현재에 이르기까지 “일본은 대륙 진출이라는 품속의 칼을 품고 겉으로는 양국 경제에 큰 도움이 된다”며 주야장천 이 해저 터널을 제의했지만, 한국은 길을 열어주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 해저터널 이야기가 나오는 순간 친일 논란이 제기되는데요. 그렇다면 일본은 왜 이렇게 대륙 진출을 꿈꾸게 된 것일까요? 아주 긴 역사를 살펴 보겠습니다.

지금으로부터 12년 전인 2011년 일본 동쪽 해상에서 규모 9.0 의 대지진이 발생하면서 관측 사상 최대 규모의 쓰나미가 발생했습니다. 동일본 대지진이라 불리는 이 재해로 후쿠시마 원전이 폭발하고 17,000명이 피해를 입었죠. 아마 일본 쪽 뉴스 중 가장 빈번한 것이 자연재해인 지진인데 그래서 일본인들은 늘 불안에 시달리며 삽니다. 이렇게 지진이 잦은 것은 일본의 지리적인 운명인데요. 즉 일본이 자리한 대륙판 때문에 그렇습니다.  

2011년 동일본 대지진 당시 후쿠시마 원전사고 모습.

지구 표면은 마치 지구를 감싸는 퍼즐처럼 조각조각 깨져 있는데, 판이라고 불리는 이 퍼즐들은 지구 내부의 작용으로 서서히 이동하며 서로 스치기도 하고, 부딪히기도 합니다. 이러한 과정에 서로 맞닿은 지각판이 더 이상 버틸 수 없게 되면 판의 가장자리인 단층이 튕겨 나가면서 크게 흔들리는데 이게 바로 지진입니다.

판구조론에 따르면 번 지구는 약 70킬로미터 두께의 7개의 대형판과 6개의 중형판으로 형성되어 있는데, 일본 동쪽 앞바다는 유라시아판, 필리핀판, 태평양판, 북아메리카판 4개의 경계에 위치하고 있어 지난 40년 동안 전체 지진의 10%가 이곳에서 발생했습니다. 이러한 재해는 일본이라는 국가가 등장했을 때부터 타고난 운명인데 하루가 멀다 하고 지진 피해를 겪다 보니 일본에서는 항상 안전한 대륙으로의 이동을 내세워 권력을 손에 쥐었는데요. 그래서 전쟁이 발발했던 겁니다.  

 

임진왜란의 원흉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우선 조선을 점령한 후에 명나라 유구국 (현 오키나와), 고산국(현 타이완), 루손 (현 필리핀)을 점령한 후 천축(현 인도) 공략해 베이징을 중심으로 한 '대통국'을 건설하고자 했었고, 이러한 대륙 진출의 야욕은 20세기로 이어집니다. '대동아공영권' 이라는 이름으로 말이죠. 당시 일본은 일본, 조선, 만주, 중국, 몽골 5개 민족이 화합해야 한다며 '5족 화합'을 내세우면서 우선 조선을 식민지로 삼고, 만주를 침공해서는 만주사변을 일으켰습니다.

그리고는 1937년 중국 대륙까지 침략해 꿈이 이루어질 뻔도 했으나, 미국을 잘못 건드렸다가 핵폭탄 2방의 지도에 지워질 뻔도 했는데요. 사실 결과가 그렇게 됐기 망정이지 일본이 중국 대륙을 침략했을 때 일본은 큰 그림을 그리고 있었습니다. 우선 일본이 점령한 조선에서부터 그림이 시작되는데요.   

대동아공영권 (적색 표시)
▲ 싱가포르 함락 후 일본군의 포로가 되는 영국군 수비대. 서구 열강이 일본군에 의해 축출되는 모습은 아시아 각국의 민중들에게 큰 충격을 안겨주었다. 개전 초기, 일본군은 이들로부터 해방군으로 환영받았다.

1917년 일본 육군 참모본부는 ‘철도형 쓰시마 해저터널 건설’이라는 계획을 발표했는데 이 계획은 본토 - 쓰시마 -부산으로 이어지는 3 가지 서로 다른 노선을 건설하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부산을 통해 만주로 올라갔다가 베이징 -난징을 경유한 후 베트남 하노이 -사이공 - 캄보디아의 프놈펜- 말레이시아로 이어지는 1만킬로미터의 철도 노선을 건설해 동아시아와 동남아시아를 일본의 손 아래에 두겠다는 것이었죠.

그리고 이 원대한 꿈의 시작은 반드시 일본 열도가 부산과 연결되는 해저 터널이 있어야 가능하기 때문에 동아시아 종단 철도 계획의 일환으로 한일 해저 터널이 검토되었던 것입니다. 1935년에는 일본 내무성에서 하늘을 오가는 도로 터널을 계획하기도 했었고 1938년에는 일본 철도성이 조선 해업 터널 및 대동아 종단철도 구상을 발표해 일본 언론에 대서특별되기도 했었습니다. 그리고 핵폭탄 2방에 좌절된 것인데요.   

▲ 폐허로 변한 나가사키. 맥아더 장군이 일본총독으로서 권한을 인계받은 이후 첫 번째 작업이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원폭피해를 담은 모든 사진 증거를 압수하고 인멸하는 것이었다.

이후 일본은 몸을 숙인 채 나름대로 산업을 키우며 해저 터널의 꿈을 잊고 있었는데, 다시 불씨를 지킨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한국인입니다. 통일교의 문선명 교주인데요. 1981년 서울에서 개최된 ‘제10회 국제과학통일회의’에서 문선명은 국제평화고속도로를 주창했습니다. 지구촌 단절 구간을 육로로 잇고, 국가간 교통망을 연결하자는 것이었는데 이를 위해 1982년 일본에 '국제 하이웨이' 사업단을 설립했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한일 해저터널 연구에 1,200억 원을 후원한 결과로 ‘일한 터널 제1차 기본구상’, ’일한터널의 교통수요 예측’, ‘일한터널의 경제평가’ 등 수많은 연구 보고서가 일본에서 발표됐죠. 그리고 실제로 일본 사가현 가라쓰시에서는 굴착을 시작해 547m를 파내려 가기도 했으나, 현재는 중단된 상황인데요. 하지만 일본의 적극적인 자세와 달리 한국에서는 많은 연구가 진행되진 않았습니다. 한국의 입장에서는 필요성이 그리 크지 않으니까요?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옛 통일교) 창시자인 문선명 총재(1920~2012).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 제공.
문선명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 총재가 제안한 한일해저터널, 사업 추진이 재개된다. 한일 양국의 이해를 이끌어내 가시적 성과를 거둘 수 있을지 관심을 모은다. 사진은 공사가 진행 중인 일본 사가현 가라쓰에 있는 나고야 조사사갱 내부.

왜냐면, 일본이 없어도 한국은 북한과의 문제만 해결되면 얼마든지 러시아를 거쳐 유럽까지 도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지난 2018년 우리나라는 국제철도 협력기구 (OSJD) 정회원국으로 가입했습니다.  OSJD는 유럽과 아시아를 잇는 국제철도 운행을 위해 창설된 국제기구로 국제철도운송 협정을 관장하고 국제 운송 표준 원칙을 수립하는 단체입니다.

1956년 소련 중국 몽골 북한 등 12개 국가가 참여에 창설됐고 현재 시베리아 횡단철도 중국 횡단 철도, 몽골 횡단철도 등 유라시아 횡단 철도가 지나가는 모든 국가들이 참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2015년부터 정회원 가입을 추진했으나, 북한의 반대와 중국의 권으로 번번이 무산되었는데 2018년 가까스로 만장일치로 정회원이 되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11일 서울 롯데호텔에서 개최된 제34회 국제철도협력기구(OSJD) 사장단회의의 개회식에서 영상을 통해 이 같은 축하메시지를 전달했다. OSJD 사장단회의는 OSJD 정회원국의 철도 운영기관 대표들이 참석하는 회의로 지난해 한국의 OSJD 정회원 가입 후 처음으로 국내에서 개최되는 행사다.

이런 상황이라면 만약 유라시아를 잇는 철도가 실제로 개통되면 한국은 동아시아의 종착지로 유럽의 독일에서 시작해 폴란드 벨라루스 러시아 카자흐스탄 몽골 중국을 거쳐 한국으로 종착하는 또는 반대로 한국을 시작으로 유럽으로 이어지는 어마어마한 계획이 실현됩니다. 종착이든 시작이든 지리적인 장점을 충분히 누릴 수 있는데, 만약 일본과 해저 터널이 연결된다면 일본이 한국의 장점을 가져가게 됩니다.

한일 해저 터널이 건설되는 순간 한국은 경유역으로 전락해버리는 단점 등등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많죠. 한일 해저터널 이야기가 제기되는 순간 터져 나오는 친일 논란.  한국의 입장에서는 잃을 것이 많다는 입장 등이 있어 한국에서 이 해저터널 이야기가 쉽게 논의 될 수 없는 이유입니다. 해저 터널로 국가를 연결한 사례는 영국과 프랑스를 잇는 유로스타가 있습니다.  

 

영국 런던 워털루 역에 도버해협 해저터널을 관통해 영국과 프랑스 사이를 운행하는 유로스타 열차가 정차해있다. 게티이미지.

영국 해협 중 가장 좁은 도보 해협을 뚫어 총 49.9킬로미터의 해저 터널을 건설했는데 이 터널이 연결되자 유로스타를 타고 런던 파리 구간을 3시간 만에 주파할 수 있게 됐습니다. 하지만 운영사 유로 터널은 수년간 재정적으로 상당히 어려움을 겪다 20년 만에 간신히 흑자로 전환했습니다.

한일해저터널의 경우 한일 간 이동 시간이 단축된다는 장점이 있지만 최소 200킬로미터에 이르는 구간의 터널을 건설하려면 최소 100조 원에서 200조 원이 필요합니다. 일본이 70% 한국이 30% 부담한다고 해도 한국이 최소 30조 원에서 60조 원까지 투자해야 하는데 과연 한국이 한국에게 유리할 것 없는 이 터널에 투자하는 것이 맞는지는 의문입니다. 경제성의 문제 정치적인 문제 한일외교 관계 그리고 일본에 대한 한국 국민의 정서 등을 감안할 때 한국은 절대로 일본의 대륙 진출을 허락하지 않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국민의 표심으로 지위가 유지되는 정치인들 역시 굳이 쌍욕을 먹으면서 추진할 대담함을 보이지도 않을테고요. 일본의 입장에서 보면, 대륙 진출의 가장 빠른 대마도를 거쳐 부산으로 진출하는 겁니다. 맑은 날에는 부산에서 대마도가 보일 정도로 지리적으로 가장 가까우니까요? 그러나 일본에서도 해결해야 할 문제가 남아 있습니다. 가장 큰 걸림돌은 아무래도 헌법일 겁니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전국이 된 일본은 제국헌법을 폐지하고 1946년 11월 3일 연합국이 제시한 평화 헌법을 공표해 현재에 이르렀습니다. 일본 헌법 제9조에 전쟁을 포기한다는 내용을 명문화시켰죠. 제9조 제1항에서는 국제 분쟁 해결하는 수단으로서 국권이 발동되는 전쟁과 무력에 의한 위협 또는 무력의 행사는 영구히 포기한다고 선언함으로써 전쟁을 포기하겠다고 명시하고 있고, 제2항에서는 "전항(제1항)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육해공군 그 밖의 전력을 보유하지 아니한다. 국가 교전권은 인정하지 아니한다" 고 규정해 군대도 보유할 수 없게 됐습니다. 

일본 평화헌법이 만들어진 순간 (도쿄 교도=연합뉴스) 전쟁을 포기하고 무력행사를 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현행 일본 헌법이 3일로 공포 70주년을 맞았다. 사진은 1946년 10월 7일 중의원에서 일본 헌법이 가결돼 성립하는 순간의 모습.

만약 한국이 일본의 대륙 진출을 반대하고 일본은 어떤 식으로든 한반도를 통해 진출하려고 한다면, 무력 충돌이 생길 수 있는데, 헌법이 이를 시키고 있죠. 우익 성향의 일본의 모든 총리가 기를 쓰고 헌법을 개정해 보통 국가가 되려던 이유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일본의 헌법은 개정이 상당히 어렵습니다. 일본 헌법 제96조에 따르면 중의원과 참의원 양원에서 3분의 2이상이 찬성해야 개헌안을 발의할 수 있으며 국민투표에서 과반수에 찬성으로 확정됩니다만 과반수가 국민 전체 과반수인지 아니면 투표자의 과반수인지 명백한 해석도 없습니다. 그래서 일본은 2007년 헌법 개정의 첫 관문으로 국민투표법안을 만들기도 했지만, 국민 대다수가 헌법 개정에 반대하고 있어 헌법이 개정되는 것이 쉽지 않아 보입니다.  

개헌에 반대하는 집회 [교도=연합뉴스 자료사진] 일본 자민당이 2018년 3월 25일 개헌안을 발표하자 시민들이 도쿄 신주쿠역 앞에서 개헌과 아베 신조(安倍晋三) 당시 총리에 반대하는 집회를 열고 있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64)가 11일 도쿄 자민당 본부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그는 전날 참의원 선거에서 여당이 압승한 것과 관련, "고인이 된 아베 전 총리의 유산을 이어받아 개헌 프로세스를 가속화하겠다"고 말했다. 도쿄=로이터 연합뉴스.

그런데 만약 무력 충돌이 없더라도 무력을 과시해 한국을 압도하려면 넘사벽 수준의 군사력을 보유해야 하는데 일본은 해군력을 제외하면 큰 위협이 되지 않습니다. 한국이 엄청나게 뽑아낸 탄도미사일, 순항미사일 등의 포병 전력 때문에 오히려 해군력을 함부로 들이밀 수도 없는 상황입니다.

한국이 일본을 침략했으면 했지 일본이 한국을 침략하는 것이 예전처럼 호락호락한 일이 아닌 것이죠. 한일 해저터널에 대해서는 일본이 1917년부터 계획을 시작할 만큼 상당히 적극적입니다. 한국에서는 일부 정치인들이 가끔 언급하지만 일반 국민들의 정서는 전혀 다릅니다.

 

만약 해저 터널이 건설된다면 일본은 천년 동안 꿈꾼 대륙 진출을 룰 수 있고 또한 유럽에서 연결되는 유라시아 철도의 시작역 이자 종착역이 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기는 합니다. 그러나 한국이 승인하지 않는 이상 헛된 망상이기 때문에 앞으로 일본이 어떻게 나오게 될지 사뭇 기대됩니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