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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인 서세원이 20일 오전 캄보디아 한인 병원에서 별세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그의 마지막 인터뷰가 재조명되고 있습니다. 서세원은 2015년 서정희와 이혼한 뒤 이듬해 20세 살 연하 해금 연주자와 재혼을 하고 둘 사이에 딸이 있다는 소문에 침묵하다가 2019년 5살 된 딸이 있다는 사실을 공개한 바 있는데요.
당시 서세원이 고백하길 "이혼 후 새 가정을 만난 건 운명이다. 더없이 행복하다 무엇보다 환갑이 탄생한 딸아이는 내 삶의 전부다. 가장 힘들고 고된 인생의 기로에서 나에게 빛을 안겨준 천사다. 다시 열정을 불태울 수 있는 동력이 됐다. 나는 방송인으로 살다 한순간 모든 걸 다 잃었지만 이 아이를 만난 걸로 개인적으론 충분히 보상을 받았다고 생각한다.
온갖 어려움을 견디며 캄보디아 사업을 따낸 것도 알고 보면 어린 딸을 둔 아버지의 절실함으로 이해하시면 된다. 아무튼 이혼과 재혼이 맞물리며 논란이 된 것에 대해서는 이유 여야를 막론하고 공인으로 물의를 일으킨 부분에 대해 이 자리를 빌어 진심으로 사죄드린다. 그런데 뜻대로 되지 않는 게 인생이다. 헤어짐을 피할 수 없듯이 새로운 만남도 마찬가지다.
한 개인의 삶과 인생은 누구한테 나 소중하다. 유명 연예인이어서 짓밟히듯 매도되는건 부당하다. 아픈 상처가 있다고 해서 행복했던 시간과 기억들까지 모두 지워지는 것은 아니지 않느냐. 만남이 기쁨이라면 이별은 슬픔이다. 헤어지니 불가항력이었다고하면, 변명이라고 하지 않겠나. 무슨 말을 어떻게 해도 지금은 소용이 없다는 걸 안다. 각자의 평온한 삶을 기도할 뿐이다"라고 했습니다.
이처럼 서세원은 늦은 나이에 얻은 만큼 자신의 딸을 굉장히 애지중지했으며 그리고 현재는 현지에서 재혼한 부인이 빈소를 지키고 있는데, 재혼한 부인이 혼절해서 말도 못할 정도로 굉장히 낙담하고 힘들어하고 있다고 합니다.
거기에 더해서 더욱 안타까운 건 앞서 얘기한 8살 딸아이인데 아직은 아버지의 소식을 정확히 모르고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 딸에게는 "아빠 지금 한국에 가 계신다" 라고 설명해 놓은 상황이라고 하며 고 서세원이 생전에 굉장히 애지중지했던 딸이기 때문에 가족들은 아빠의 소식을 어떻게 전할지 현재 너무나 걱정이 크다고 합니다.
그리고 서세원의 갑작스러운 별세에 대해 여러 가지 이야기들이 참 많은데 생전 서세원과 친형제 못지않게 친한 사이였던 캄보디아 한인회 부회장 박현옥씨의 증언에 따르면 다음과 같습니다. "서세원 목사님이 당뇨가 심했다.
당뇨로 오랫동안 고생을 했고 그리고 저혈당이 심해 밥도 제대로 못 먹어 앙상하게 말랐었다. 그렇게 당뇨가 굉장히 심해서 제가 봤을 땐 수액을 맞아 당뇨 합병증으로 쇼크사로 돌아가신 것 같다. 여기에 있는 의사들도 그렇게 얘기하더라. 그런데 놀라운 건 당시 의사가 없어서 그날 새로 채용하려고 했던 간호 간호사가 주사를 놔줬다고 하더라. 그 간호사는 그날 면접을 봤다고 하며 참고로 병원 주인은 서세원 목사님 후배인데 내가 도착했을 때 땐 이미 별세하셨다.
참고로 여기에 있는 병원은 한국에 있는 병원으로 생각하면 안 된다. 아직 병원 시스템을 갖추지 못한 상태라 일반 오픈도 하지 않고 있었다. 병원장은 한국에 있고 의사가 없어서 구하고 있다고 들었다. 의료과실 가능성에 대해서는 경찰이 와서 검안을 했는데 사인은 평소 당뇨병을 앓아온 서세원 목사님이 갑자기 돌아가신 걸로 잠정 결론을 내렸다. 그리고 행여나 의료 과실을 물으려고 해도 캄보디아에서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아울러, 이 간호사에 대한 형사 처벌은 검토하지 않고 있는데, 돈을 받고 의료 행위를 한 게 아니라는 게 이유다" 라고 했습니다.
한편, 한때 일각에서는 고 서세원이 캄보디아에서 미디어 사업을 한다. 대형 부동산 사업을 한다. 이런 내용이 알려진 바가 있는데요. 하지만 한인 부회장 말에 따르면 그와 전혀 다르게 현지에서 생활이 너무 어려워서 식사도 제대로 못했다고 하며 다만 미디어 사업을 하려고 시도는 있었다고 합니다. 이와 관련해 캄보디아 한인회 부회장이 증언하길 "서세원 목사님과 인연은 몇십년 됐다. 한국에서부터 현지 교회에서 목회 활동을 나하고 같이 했다. 사업 진행은 방송국 설립공사를 하다가 중단됐는데 전염병 사태로 그렇게 된 거다. 생활은 굉장히 어려우셨다. 식사도 제대로 못하셨다. 자금 상황도 그렇고 돈이 없었다. 그럼에도 종교 활동을 열심히 하며 아이들 찾아가 봉사도 많이 하셨다"라고 했습니다.
한편, 서세원의 별세 소식을 들은 전 부인 서정희는 한 언론과 인터뷰에서 "그간 여러 차례 가짜 뉴스가 워낙 많아서 믿고 싶지 않다" 며 안타까워했는데요. 그러면서 작년 10월에 한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고백하기도 했습니다. "사실 이혼 원인은 내 책임 없지 않다. 대중에게 내조 잘하고 아이 잘 키우는 모습을 보였지만 숨겨진 반한 기질이 있었다. 잘 참다 한 번씩 올라올 때는 잡을 수 없을 정도로 대성통곡을 해서 그를 힘들게 했다. 고분고분 순종하다가도 갑자기 싸늘하게 돌변에 말을 하지 않고 얼음장같이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사실 서세원 씨와 함께한 32년 동안 사랑이 무엇인지 모른 채 결혼 흉내만 내며 살았다. 그리고 지금 와서 어떻게 생각해 보면 허무맹랑한 꿈을 꾼 것 같기도 하다.
남편을 목회자로 만들어 올곧은 사람으로 변화시키겠다고 생각했고 그 심지에 불을 붙이기만 하면 바뀔 사람이라는 믿음을 가졌다. 하지만 후로 1년을 1년을 버텼으나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래서 결국 가면을 벗어 던진거고. '이혼녀', ' 엘리베이터 사건의 주인공'이라는 꼬리표를 당당하게 받아들인거다" 라고 했습니다.
마지막으로, 고 서세원이 생전 마지막 인터뷰에서 고백하길 "대중의 얼굴이 널리 알려진 사람은 한 번 미운 털이 박히면 좀처럼 헤어나기 힘들다. 한 번의 실수가 또 다른 실수를 낳고 갈수록 깊은 수렁으로 빠져드는 악순환의 반복이었다. 대중의 인기와 사랑을 많이 받았던 만큼 잘못에 대한 책임과 의문은 더 크게 질 수밖에 없더라. 그 부분은 나도 인정하는 바이며 처신과 행동을 더 바르게 하라는 경고이자 부메랑인 셈이다. 죄송한 부분이 많아 할 말은 없지만, 나라고 왜 억울할 데가 없었겠나. 일일이 대응하지 않은 건 모두 다 인정한다는 게 아니라, 항변해봐야 소용없기 때문이다" 라고 했습니다.
한편, 1979년 라디오를 통해 데뷔한 고 서세원은 2000년대초 까지만 하더라도 방송계에서 최고의 예능인으로 군림하다 발목을 잡은 것은 바로 영화인데 <조폭 마누라> 대박 히트로 영화 사업에 올인했지만, 이후에는 하는 것마다 연거푸 고배를 마시면서 자주 송사의 휘말리곤에서 했습니다.
그런 와중에 전부인 서정희와 좋지 않은 사생활을 보이며 결국 이혼했고 그리고 얼마 뒤 그는 해금 연주자인 두 번째 아내를 만나 조용히 혼인신고를 하는 것으로 재혼 가정을 꾸렸습니다. 그리고 이 무렵부터는 방송 활동을 일체 그만두고 여러 사업들을 하게 되는데 한 번은 경기 용인 지역에서 60여 채의 전원용 타운하우스를 지어 분양했고 그리고 가장 최근에는 캄보디아에서 3조 원 때 글로벌 사업을 추진한다는 소식을 알리며 주위를 깜짝 놀라게 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가 추진했던 사업은 전염병 사태로 무산되고 말았고 그리고 앞서 얘기한 대로 세간에 알려진 것과 달리 그의 타국살이는 생각보다 훨씬 더 가난하고 힘들게 지내야 했습니다.
이와 관련해 한인 부회장 박현옥 씨는 "매스컴에서는 몇 조 사업을 한다고 했지만, 그는 캄보디아 고위층에게 사기를 당하는 등 사실상 돈이 하나도 없었고 그런데 일은 굉장히 많이 벌려나 현재 큰일 났다" 라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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