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드라마에 한 번 빠지면 기본 100편 이상씩 보게 된다. 작년 <오징어 게임>이 미국 최고 권위 애미상을 수상하는 등 한국 드라마의 위상이 심상치 않습니다. 이에 145년 역사를 자랑하는 미국의 대표 매체는 미국인들이 한국 드라마에 이토록 열광하는 이유에 대해 분석하기에 이르렀죠. 그런데 배경에 한국인들이 전혀 예상치 못한 이유가 있어 충격을 주고 있다는데요.
최근 미국 방송계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애미상 6관왕을 휩쓸며 새로운 역사를 쓴 한국 드라마 <오징어 게임>. 한국 배우가 애미상 주연을 받은 곳도 비영어권 드라마의 감독상 수상도 모두 처음이라고 하는데요. 이에 대해 전 세계 외신들은 한국이 기존 할리우드 독점시스템을 바꿀 위치에 도달했으며 이제 TV 매체의 미래를 상징한다고 극찬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미국의 정통 매체 워싱턴 포스트는 <오징어 게임>이 등장하기 한참 전부터 미국 내 한국 문화의 주류화를 주도하는 주체가 따로 있었다고 보도했는데요. 대상은 바로 흑인 여성들이었습니다. “많은 흑인 여성들이 한국 드라마에 빠져 위안을 얻고 있었다”라며 그 이유를 크게 3 가지로 나눠 분석한 해당 기사에는 전혀 생각지도 못한 새로운 시각과 문화적인 배경이 담겨 있었죠.
우선 그들이 한국 드라마를 좋아하는 첫 번째 이유는 인종 문제로 들끓는 미국 사회에 각종 피로한 소식에서 눈을 돌릴 수 있게 만들어준다는 점이었는데요. 기사 인터뷰에 참여한 52 세의 루이스는 "당연한 말이지만 한국 드라마에는 흑인이 안 나오기 때문에 미국 드라마에서처럼 범죄자로 나오는 흑인을 볼 일이 없어요" 라며 자신에게 한국 드라마를 보는 시간이 유일한 힐링타임이라고 말했습니다.
<사랑의 불시착>을 보고 한국 드라마에 중독되기 시작했다는 또 다른 인터뷰 참여자 샤메인은 이후 모든 한국 드라마를 빼놓지 않고 시청하며 한국 음식을 요리하고 한국어를 공부하게 됐다고 하는데요. 그녀는 이제 한국 여행도 계획 중이라고 합니다.
"흑인 여성으로서 한국문화는 완전히 다른 세계이자 매력적인 문화라서 너무 흥미롭고 더 깊이 파고들 수밖에 없었어요"라고 답변한 24 살의 미키아 역시 우연히 <시크릿 가든>을 본 뒤 수백 편의 다른 한국 드라마 말해보고 직접 한국도 다녀왔다는데요. 로맨틱 코미디, 역사 서사시, 스릴러, 판타지 등 다양한 장르를 아우르며 해외 시청자들을 매혹시키는 한국 드라마. 해당 기사는 드라마 속 한국의 모습이 이러한 이유에서 한국 문화의 세계적인 인기를 높이는 데 큰 역할을 한다고 설명했습니다.
이어서 두 번째 이유는 가족 중심적이고 웃어른을 공경하는 한국 문화가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의 문화와 비슷한 점이 많아서 공감 간다는 것이었는데요. 한국 드라마는 많은 사람들에게 친숙한 문화적 주제를 인용한다고 합니다.
가족을 소중하게 여기는 것. 연장자에 대한 존중뿐만 아니라 사랑의 표현으로서 음식이 중심적인 역할을 하는 것에 대해서도 덧붙였죠. "한국인은 역시 밥심"이라는 말이 생각나는데요. 드라마에서도 밥은 꼭 먹이는 한국의 문화가 이들이 꼽는 인기 요인이라는 점이 상당히 흥미롭습니다.
그들은 한국 문화를 차별화하는 핵심 가치 중 하나인 '정' 이 아프리카계 미국인과 문화적인 유대감을 형성한다고도 말했는데요. 한국인들에게는 또한 수세기에 걸친 침략과 억압, 고통에서 기인하는 '한'이 기저에 깔려 있기 때문에 비슷한 역사적 아픔을 가지고 있는 흑인 여성들이 특히 공감할 수 있다고도 설명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 이유는 한국 드라마의 순수함이라고 하는데요.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미국의 TV 프로그램과는 다르게 한국 드라마에서는 키스 신 하나 보려고 에피소드를 15개에서 30개 또는 이상을 기다려야 하는데 천천히 타오르는 로맨스를 보면서 그걸 기대하는 재미가 쏠쏠하다고 합니다. 한국드라마는 인물 간의 관계성이나 서사를 쌓아가는 방식이 간질간질하 촘촘하죠.
우리나라 시청자들은 개연성이 없으면 안 좋아합니다. 노골적인 장면 없이도 감정선을 따라가며 로맨틱한 관계로 발전해 나가는 과정을 지켜보는 것에 설렘과 대리만족을 느낀다는 이들. 한국 드라마 속 이런 과정은 자신들이 모두 원하지만 당연하게 가질 수 없는 유형의 로맨스이기 때문에 더욱 끌린다며, 한국 드라마를 보면서 연애 기준이 높아졌다고 인터뷰한 사람도 있었습니다. 사실 흑인 여성들은 미국에서 성적 대상화의 표적이기에 유난히 부러움을 사는 것 같기도 합니다.
천천히 순수하게 깊이 있게 사랑하는 한국 드라마 속 장면이 더 설레는 것도 있지만 항상 미국 드라마에서 가볍게 소비되는 흑인 캐릭터를 볼 일이 없으니 인종 차별로부터 자유롭고 온전히 판타지로 즐길 수 있는 것이죠. 백인이 기득권층인 미국 사회에서는 드라마에서조차 백인 아닌 유색인종들이 제대로 된 서사도 없이 급전개 처리되는데 한국 드라마는 경제적으로 백인 주류 사회와 레벨 차이가 없는 나라에서 백인이 전혀 기득권이지 않은 세계의 로맨스물이기 때문에 그것이 신선하고 좋게 다가온다는 것입니다.
우리 입장에서는 한국 콘텐츠를 즐기는 외국인들이 “편견을 깨부어서 좋아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 뻔한 내용을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이해가 안 갈 수 있지만 한평생 아주 사소한 부분까지 차별받으며 살아온 이들에게는, 백인이 아닌 인종이 이러한 서사를 가지는 것 자체가 가치관을 흔드는 문화충격이라는데요.
이전에 봉준호 감독의 오스카 수상 소감이 미국 전역에 큰 충격을 안겼던 것도 이와 같은 맥락이 아닐까 싶습니다. 한국 영화가 지난 20년 동안 세계 영화계에 엄청난 영향을 끼쳤음에도 왜 단 한 작품도 오스카 후보에 오르지 못했다고 생각하냐는 인터뷰 질문에 "오스카는 로컬이잖아요"라는 쿨한 답변을 했던 봉준호 감독. 이에 미국 네티즌들은 "맞는 말인데 생소하고 충격적이다". "맞다. 오스카는 칸, 베니스와 같은 국제영화제가 아니라 로컬 시상식이다" 라며 미국이 세계의 중심이라는 오만한 인식에 경종을 울렸다는 반응들이 이어졌었죠.
한편으로는, 한국인들이 이처럼 당당하고 자유로운 관점에서 능력을 펼칠 수 있는 것도 우리 땅과 민족성을 지켰기 때문에 가능한 것 싶습니다. 흑인이 절대 다수인 나라에서는 흑인이 주역인 문화 콘텐츠가 많지 않을까 싶지만 흑인 인구의 가장 많은 아프리카만 봐도 백인들의 침략과 전쟁의 역사들로 인해 미디어를 자체적으로 만들 만큼 지금 발전한 나라가 적은 편이기 때문이죠.
자본력 뿐만아니라 당연히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생각 자체가 어려운 것이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우리도 힘든 세월을 겪었지만 끝까지 민족성과 정체성을 지켜냈기에 오늘날과 같이 문화적인 풍요로움을 누리고 더욱 수준 높은 작품들을 계속해서 만들어내는 힘을 갖게 되었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선민의식으로 가득 찬 서구권에서조차 그것을 인정하기 때문에 한국의 대중문화가 전 세계적인 주류 문화로 떠오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요즘에는 한국인이 주인공인 미국 드라마도 흔하게 볼 수 있죠.
이처럼 세계를 향해 뻗어 나가는 한국 드라마가 앞으로도 꾸준히 성장을 이어 나가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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