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영국의 세계적 정유기업 셸(SHELL)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희비 교차
Eddi
2022. 8. 1. 1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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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세계적인 정유기업 셸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희비가 교차하고 있습니다. 에너지 대란으로 주가가 폭등했지만 러시아 때문에 손해도 만만치 않습니다. 셸이 19세기 후반에 러시아 석유를 기반으로 성장한 기업이기에 참으로 아이러니한 상황인데요. 러시아 석유를 나르기 위해 세계 최초의 유조선을 선보인 기업도 바로 '셸' (SHELL)입니다.
11일 외신에 따르면 셀은 러시아에 자산을 빼앗길 위기에 처했습니다. 극동에너지 사업인 ‘사할린-2’에 투자했는데 러시아가 운영사를 교체해 이 사업에서 제외될 처지가 된 것입니다. 이에 앞서 셸은 전쟁이 터진 뒤에도 러시아산 원유를 매입해 비난을 받기도 했는데요. 셸은 지난 3일 사과한 뒤 러시아에서 철수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이로 인해 최대 50억 달러, 우리 돈 약 6조원 규모의 자산피해가 발생할 것이란 보도도 나왔습니다.
셸 (SHELL)은 이름 과 로고에서 알 수 있듯 조개껍데기로 시작해 러시아 석유로 큰 기업입니다. 셸 창업자 마커스 새무엘 (Marcus Samuel) 은 1853년 영국 런던의 가난한 유태인 집안에서 태어났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직후 장사거리를 찾기 위해 아시아로 향하는 배에 몸을 싣게 됐는데요. 그렇게 1871년 18세의 새뮤얼은 아시아 여러 나라를 거쳐 일본 요코하마 항구에 내리게 됩니다. 가진 돈이 거의 없는 동안 새무엘은 바닷가의 빈 판자집에 기거하며 일본 갯벌에서 일본인들이 조개를 캐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때 ‘저 아름다운 조개껍데기로 단추나 장식품을 만들어 팔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죠. 사업가 기질이 남달랐던 그는 조개껍데기를 단추, 장난감으로 가공해 런던에서 골동품 가게를 하는 아버지에게 보냈습니다. 이 조개장식품은 뜻밖에도 불티나게 팔렸습니다.
자신감을 얻은 새뮤얼은 스케일을 키어 일본에서 유행했던 옷 칠한 조개껍데기 장식의 공예품을 런던 아버지집으로 대량으로 보냈고 연거푸 대박을 터트렸습니다. 자신감을 얻은 새뮤얼은 1876년 요코하마에 자신의 이름을 내건 ‘새뮤얼 상회’를 설립했습니다. 조개껍데기 장식의 ‘이색상자’ 장사가 성공하자 새뮤얼은 큰 꿈을 꾸며 무역회사를 차렸는데요. 마침 1880-90년대는 다양한 내연기관이 발명되던 시기로 석유 수요가 급증했습니다. 그즈음 러시아도 유전을 개발했는데요. 일본과 중국은 그때까지 목탄으로 난방을 하고 있었죠. 새뮤얼은 러시아 코카서스 지역의 등유와 경유를 일본과 중국에 팔 궁리를 하게 됐습니다. 러시아와의 거래엔 성공했지만 석유를 아시아로 운반하는 일이 쉽지 않았습니다. 처음엔 석유를 깡통에 담아 일본 선박으로 운반했는데 통이 쓰러지기 일쑤라 손실량이 컸습니다. 또 화재위험때문에 선박회사들이 운송을 꺼렸습니다. 새뮤얼은 방법을 강구하다가 직접 유조선을 고안해냈습니다. 배 전체를 기름탱크로 만들자는 아이디어를 낸 것이죠. 전문가에 설계를 의뢰해 영국 조선소에 발주했고, 1892년 세계최초의 유조선 선주가 되었습니다.
이 유조선은 세계 석유 운송에 혁신을 몰고 왔습니다. 이후 러시아에 반유대주의가 만연하자 새뮤얼은 과감하게 다른 나라로 눈을 돌려 당시 네덜란드 식민지였던 인도네시아에 집중했습니다. 인도네시아 유전개발 투자에 성공한 새뮤얼은 한꺼번에 8척의 유조선을 발주하면서 역시 세계최초로 유조선단을 꾸렸습니다. 이 선박들에 조개 마크를 붙였고, 이것이 정유회사 셸의 시작이었던 겁니다.
새뮤얼은 1897년에 정식으로 셸운송.무역회사를 설립하고 유조선을 통한 대량 운송으로 석유가격을 크게 낮춰 세계시장을 석권해 나갔습니다. ‘석유의 나폴레옹’, ‘유럽의 록펠러’라는 별명을 얻은 새뮤얼은 은행가로 활약하기도하고 정계 진출해 런던시장도 지냈습니다. 하지만 영국에서 유대인이 석유업계를 좌지우지한다는 비난 여론이 일자 새뮤얼은 어쩔 수 없이 석유회사를 팔아야 했고, 결국 셸은 1907년 네덜란드 왕립석유회사(로열더치패트롤리엄)과 합병해 ‘로열더치셸’이 됐습니다.
그런데 매각 당시 새뮤얼은 회사가 존속하는 한 조개모양의 상표를 사용해야 한다는 조건을 걸었습니다. 무일푼 새뮤얼을 일으켜준 조개 껍데기에 대한 고마움의 표시였던 거죠. 이처럼 러시아 석유를 거래하며 글로벌 기업 도약의 발판을 마련했던 셸이 130여년이 지난 러시아때문에 희비가 반복되고 있습니다. 만약 마커스 새무얼이 살아 있다면 이런 상황을 어떻게 생각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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